국풍

 


 난생 처음 손에 들어온 역사소설의 무게감은 다소 부담스러웠다. 국사라느니 역사라느니 학창시절의 나하고는 정말 악연이다 못해 무관심의 경지였으니 사실 따지고 보면 '자의'로 역사라는 것에 뛰어든 것은 내 인생 최초라는 점에서 이 책 '국풍 1135'는 나에게 있어 꽤나 의미있는 첫걸음이다.
 
 역사소설이니까 역사적 배경을 꿰고 있지 않으면 이해가 잘 안되려나 싶었는데 이런 나라도 편하게 술술 잘 읽혀지는 이 책의 특징에 놀랐다. 그리고 이렇게 조금씩 빠져들다보면 마치 드라마를 보고 있는 듯 머리 속으로 영상이 떠올려질 만큼 작은 것 하나 놓치지 않고 매끄럽게 묘사되어 있는 등장인물들의 대화와 이야기의 흐름에 또 한번 놀란다.
 
 이 소설에는 딱히 불꽃 튀기는 전쟁이나 피 튀기는 싸움과도 같은 스펙터클한 것이 별로 없는데도 항상 긴장의 끈을 놓지 못하게 하는 매력이 있다. 인물간의 갈등을 그린데도 한껏 격조를 차린 선비들의 주고받는 말들과 그들의 작은 몸짓과 행동만으로 순간 숨이 조여지는 듯한 분위기를 만들어버린다. 흡사 시를 쓰듯 우회적인 말 한마디로 정곡을 찌르는,
 
 특히. 이런 고요하면서도 강한 면모에 반할 수 있는 난 '정지상'이란 인물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칼을 찬 적들이 쫓아온대도 여유로울 수 있고, 말과 글이 길지 않아도 왕의 마음까지도 움직이게 할 수 있다. 나라의 녹을 먹는 자가 물질과 명예를 두른 수족의 편안함보다 깊은 산 속 자연을 두른 소박함을 추구하면서도 그의 머리에는 벌써 세상의 흐름이 모두 정리되어 있는 듯 했다. 칼로 찔러 그의 육체를 죽일 순 있어도 그의 신념은 온전하게 남아있겠구나 싶었다.

 아직 확실히 정체가 밝혀지지 않은 인물이 있다. 아니지. 인간인지 아닌지도 확실치 않으니까. '윤기령'은 도데체 뭘까? 그녀와 봉심과의 만남 장면에서 간담이 서늘해지는 듯한 눈초리를 본 것 같다. 분명 글을 읽으며 머릿 속으로 장면들을 따라가고 있었는데 어느새 보니 봉심은 피흘리며 쓰러져있다. 누구도 제대로 본 적 없는 '윤기령'이 개경과 서경(이 소설의 배경)을 꽉 쥐어 틀고 있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폭탄처럼.
 보이지 않는 것이 보이는 것을 잡고 있다.라..
 아니 작가는 어떻게 이런 신기하고도 기발하고도 임팩트한 장치를 심어놓을 수 있지?

 아직 2권을 보지 않은 나로써는 여러가지 궁금증과 기대감이 남아버린 1권이었다.
 


렛츠리뷰

by mi_an | 2009/03/24 21:54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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